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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변호사 이소아 인터뷰 2016-11-16 조회수 5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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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은 판·검사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연수원에서는 주로 판결문을 작성하는 형식적인 부분에 대해 배워요. 물론 그런 부분들도 중요해요. 하지만 저는 구조적인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어요. 그러던 중, 학부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활동가 선배들을 만났고, 그분들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연수원에서 ‘공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활동가이면서 변호사로 살 수도 있겠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연수원 졸업 후에는 단체에서 상근변호사로 일하다가, 좋은 기회에 민변 여성인원위원회 위원장님을 통해서‘다시함께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다시함께센터’는 성매매피해여성을 상담해주는 곳인데, 당시만해도 저는 성매매와 관련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어요. 성매매 문제는 성평등 부분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가장 최전선에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요. 그래서 단체 간의 연대나 액팅이 굉장히 활발해요. 그곳에서 성폭력, 성매매, 그 외 인권문제 등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관련 단체들과 다양한 인맥을 쌓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그러던 중, 민변 본부에서 상근 변호사 제안이 들어왔어요. 운이 좋았어요. 돌이켜 보면 한 곳에서 정착하지 못 한 아쉬움도 있어요. 저에게 제안이 들어 온 이유는, 민변은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단체 내에서 직접 경험을 해 본 변호사를 원했어요. 보통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서면을 쓰는데 집중하고, 직원이 접수, 행정실무 등의 업무를 나눠서 해요. 그에 반해 민변은 재정, 회의 및 회의록 작성, 청소 등 모든 업무를 같이 해야 하는 구조였어요. 2. 동행과 같은 단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민변에 있을 때 부터요. 민변에 있을 때 소수자인권위원회 담당이었는데, 소수자인권위원회 소속 6명이‘희망법’을 만드는 것을 보았어요. 또 42기 임자운 변호사가‘낭만펀드’를 조성해서 나오는 것을 봤어요. 내가 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직접 만들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동료변호사들이 기획력을 가지고 만들어 가는 것을 보고 광주에서 공감과 같은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3. 광주 민변 지부가 있는데도 동행과 같은 단체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실 처음에 내려올 때는 광주지부 민변이 발전하고 있는 만큼, 광주지부 상근변호사로 ‘저를 뽑으세요.’하고 제안할까도 생각했어요. 근데, 무엇보다 광주지부가 상근변호사를 채용할 만큼 재정적인 지원이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민변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일도 많지만, 민변 본부 노동위원회에서 다루고 있는 노동문제의 경우, 큰 노조와 관련된 사건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그에 반해, 비정규직, 경비노조 등과 같은 작은 노조와 관련된 문제는 다루지 못하고 있어요. 민변에서 다루지 못하는 그러나 중요한 문제들이 분명히 있어요. 이 외에도 장애인 성폭력, 여성폭력 문제와 관련하여 일터 괴롭힘, 성희롱 등 다루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광주 민변은 상근변호사가 없기 때문에 문제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동행과 같은 단체가 꼭 필요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민변 회원이고 아주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4. 조금 더 구체적으로, 동행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제가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만 다니고 대학을 서울에서 다녔기 때문에 광주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5. 변호사님이 동행에서 하게 될 업무를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크게 두 가지인데, 단체 운영과 송무에요. 두 가지 다 경중 없이 중요해요. 특히 단체 운영과 관련해서는 교육 사업기획, 홍보사업기획, 후원 등이 있고요. 저, 안현주 변호사님, 유은미 실장님, 10명의 운영위원분들과 모두 함께 하는 거에요. 6. 1년 반 정도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 해마루와 동행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것에 차이가 있나요? 보통 변호사들은 당사자나 단체의 요구가 있어야 그 이후에 움직여요. 변호사는 그럴 수밖에 없어요. 반면‘동행’에서는, 단체 ‘안으로’ 들어가서 그곳의 논의 체계에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그 분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서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일례로, 여수 여성사망사건의 경우, 광주여성변호사회에서 법률지원단을 구성해서 여성분들 면담을 진행 했어요. 분명 이 활동도 의미가 있어요. 이후에 여수 여성사망사건을 지원하기 위해서 여성단체가 조직된 연대회의가 있었어요. 이 연대회의에서는 법률지원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 등 다른 부분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어요. 기자회견을 누가 , 어떤 순서로 발언을 할 것이며, 면담요청준비는 어떻게 할 것이며 등등 전체적인 논의 체계에 전면적으로 결합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죠. 7. 변호사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활동가의 면모가 굉장히 강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경계선에서 행동하고 계신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변호사와 활동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거죠. 활동가는 그 문제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활동가로서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며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저와 맞아요. 반면 변호사로써 거리두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래야지 나의 전문성이 인정이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리고 이 부분이 힘들어요. 그 부분의 강약을 조절하기가 가끔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는 것이 좋아요. 법률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거든요. 저는‘내가 이 문제 전체를 해결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일하지는 않아요. 저는 그냥 문제를 갖고 있는 분들과 조금 더 함께 있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경우가 많아요. -변호사와 활동가의 경계선에서 활동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여수 여성사망사건의 경우는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으로 피해자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어요. 현재 법의 언어 혹은 질서 내에서는 당사자의 말이 법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들의 말을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지난 월요일에 있었던 성폭력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저는 당사자가 아니고 전달자의 역할을 할 뿐인 거죠. 이 와중에 굉장히 무기력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변호사는 무언가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소송의 승패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이뤄내야 하는 사람이고요. 사실 피해자의 일관성 있는 진술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나오는 것을 보고, 활동가로서 저의 마인드와 변호사로서 마인드가 내면에서 엄청 싸우고 있어요. 활동가로서의 마인드는 항소심에 가서 모든 언론을 동원하여 기자회견을 하고, 단체들의 연명을 통해 문제점을 성토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자의 대리인으로서 의견서를 제시하고 절차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제가 만약 활동가로써 이 모든 것을 같이 하게 되면, 그럼 변호사로서 나의 말에 힘이 실리지 않게 될까 걱정인거에요. 그럼 당사자의 말이 법원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힘을 잃게 될까봐 걱정이 되는 거에요. 8. 그럼 변호사님은 언제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음... 부끄럽지만 저는 여성학을 공부한 적이 없어요. 사실 저도 평범하게 법학과를 졸업한 보수적인 사람으로서 고정관념이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대학교 때는‘성매매는 자발적으로 선택 한 것 아닌가?,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9. 그 동안 많은 사건을 다루셨는데,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신가요? ‘다시함께센터’에서 제일 처음 지원했던 사건이 생각이 나네요. 초반에‘다시함께센터’에 들어가서도 저는 성매매가 유죄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무죄 취지의 서면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성매매를 둘러싼 문제점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어요. 결국 기소유예가 나왔지만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지금 지원하고 있는 사건들이죠. 월요일에 무죄가 나왔던 성폭력 사건, 세월호 진도경찰관 사건, 여수 여성사망 사건이 생각나네요. -다 기억에 남는다고 하시네요. 당사자에게는 평생에 있어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들이니까요. 변호사님이 단어 선택하시는 거 들어보면 변호사 본인의 입장이 아닌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시는 거 같아요. 그건 많은 변호사님들이 똑같을 거에요. 사건을 승소하더라도 뿌듯한 것이 아니고 다행인거죠.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이루어 진 것이 내 공이 되는 것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아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에요. 이건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많은 선배 변호사님들이 그렇게 생각하세요. 11. 앞으로 동행에서 수임하게 될 사건에 어떤 자세로 임하실건가요? 함께 있는 것이죠. 잘 듣고, 12. “앞으로 광주에서 동행이 어떤 역할을 해나갔으면 좋겠다.”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동행’의 역할에 대한 거창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법이라는 언어를 배운 똑똑한 도구로 함께 있다가 기회가 되면 중요한 무기가 될 수도 있고, 함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함께 더 가까이 있으면 더 긴밀하고....당사자가 하는 말의 의미도 더 잘 알 수 있고... 아무튼 확실히 다른 부분이 있으니까요. 저는 이렇게 일하는 것이 좋고 편해요. 13. 변호사님 삶의 모토는? 무조건 행복하게 살 거에요. 인생 한번이거든요. 저는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그럼 어떤 변호사이고 싶으세요? 전문적이었으면 좋겠죠. 하하하(웃음) 변호사로써 저는 제가 하는 말이 논리적으로 항상 상대방에게 어필됐으면 좋겠어요. -변호사가 되면 어느 정도 말에 힘이 생기지 않나요? 변호사라는 자격만으로 말의 힘이 당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나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말에 힘이 있으려면 계속 공부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저는 책을 통해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요. 네트워킹을 통해 그 일을 잘하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 공부하며 배우고 있어요. 무언가를 잘 안다는 것은 논리적인 이해를 말할 수도 있지만 , 무엇보다 정확히 알고 전달하기 위한 모든 것은 당사자로부터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전면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서 활동가이면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이에요. 모든 힘은 당사자로부터 오는 것이니까요. 당사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것도 시작할 수 없어요. 우리는 똑똑한 손발 역할을 하는 것 뿐 이죠. -지금까지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은, 변호사님은 본인보다는 남을 위해 살고 계신 거 같아요. 그게 가능한가요? 저는 오로지 결국 나를 위해 일하는 거에요. 재미있으니까 하는 것이 누군가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이 일을 하면 재미있고 나 스스로가 살아 있는 것이 느껴져요. 인간 이소아와 변호사 이소아는 연결되어 있어요. 인생은 한번이라고 했잖아요. 무조건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14. 동행과 같은 비영리단체를 설립하려는 후배 공익변호사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으신가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지고 해야지!’ 하는 순간은 오지 않아요. 사실 주변에서 공익 변호사 자리가 없다고 추상적으로만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 사람들에게 알아봤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알아봐서 정말 자리가 없다면 그럼 만들어 볼 생각은 했냐는 거에요. 혼자 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함께 할 방법을 생각하면 되죠. 또 어떻게 하나 모르겠으면 물어보면 되죠. 저는 정말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방법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거에요. 15. 앞으로 관심을 두는 분야가 있으신가요? 복지 문제 중 장애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 장애인 인권 관련해서 관련 법률 등 여러 가지 메카니즘이 마련되어 있지만, 특히 사회권적 기본권과 관련된 복지서비스 부분은 여전히 미흡해요. 우리나라는 복지가 은혜적으로 베푼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매뉴얼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복지혜택의 적용 대상자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사회복지서비스의 경우, 시행규칙에서 정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분성을 이유로 헌법 소송이 인정되지 않고 있고요. 전체적으로 소송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점도 있고요. 그래서 사회보장법학회를 통해 계속 공부를 하고 있고, 현장접촉을 위해 장애단체 등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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