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오월, 길가에 앉아서!
2024-06-05      조회수 134
광주의 오월, 길가에 앉아서!
(제44회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후기)

어울리는 사람 기린

광주의 오월은 언제나 그렇듯 뜨겁고 또 따뜻합니다. 무등(無等)의 가치 위에 5·18 정신을 바탕으로 여전히 역동하는 광주에서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사회 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제게 더없는 자부심이기도 하고요.

 

올해도 역시나 봄이 돌아왔습니다. 금남로와 전일빌딩 주변에도 초록이 더 무성해졌고, 구 도청 인근의 밤거리에도 젊은이들의 활기가 더 뜨거워진 것 같다는 전언도 심심찮게 들리는 요즘이지요. 부러 찾기는 어려워도 동행은 최근 자주 금남로 방향으로 점심 행차의 방향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냥 왠지 한 번 더 그쪽 방향으로 걸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월이 여전히 뜨겁게 우리 곁으로 오는 것과 달리 올해는 조금 애석하고 답답한 기분도 함께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5·18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활동 종료에 많은 시민들이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계실 것 같고, 44주년을 맞이하는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이 계승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은 2024년 대한민국의 상황이 또 그러한 것 같습니다.

 

문득, 1980년 이 거리를 메웠던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1980년 금남로에서 모두가 다 깃발을 들고 피를 흘리지는 않았더라도 무엇이라도 하여야겠다는 마음으로 주먹밥을 나누고 환자를 돌보던 숱한 소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연대의 정신을 보여준 것처럼, 오늘날 동행도 매 사건 선봉에 서서 변화를 견인하는 일 뿐 아니라 어두운 시대에 소소히 촛불 하나 켜는 일 역시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지난 5월 17일 마침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5·18 기념식을 맞아 금남로에서 선전전을 하기로 결의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장애 시민을 태우지 않는 열차 앞에서, 하루아침에 잘려버린 중증장애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정부에게서 지독한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을 뜨겁게 환영하는 일이야말로 2024년 44주기를 맞는 5·18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했습니다. 마침, 44주기 5·18 기념위에서도 5·18정신 계승을 위해 시민들의 민주 평화 대행진을 기획하고 있다기에 행진하는 시민들에게 장애 차별의 현실을 호소하기에도 좋은 기회였고요.

한 대뿐인 금남로4가역의 엘리베이터로 한 명, 한 명 도착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을 기쁘게 환영하고, 함께 뜨겁게 투쟁가를 부르며 금남로4가에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하면서 민주 평화 대행진 시민 행렬을 기다리는 일은 무척 설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대한 혐오 발언과 폭력적인 공권력이 무성한 요즘, 광주 시민들에게만큼은 따뜻한 환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나는 풍물패와 “모두의 오월, 하나 된 오월”이라고 적힌 큰 깃발과 태극기가 나부끼고 이내 저 멀리 유동사거리를 돌아서는 시민 대오의 선두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노란 옷을 입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보랏빛 깃발을 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오늘, 금남로를 찾아주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전국에서 광주를 찾아주신 시민사회 단체의 행렬이 길가에 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향해 뜨겁게 외치는 응원의 목소리, 장애 해방 투쟁가와 광주 출정가가 절묘하게 공간을 서로 배려하듯 섞으며 공기를 아우르는 그 느낌이야말로 말로 길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바로 그 “5·18 정신”임을 다소 울컥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구 도청으로 전진하는 행렬 때문에 부득이 인도에서 짧지 않은 시간 이동하지 못하게 되었음에도 박수와 함성으로 행렬을 뜨겁게 격려하던 많은 광주 시민에게도 깊은 존경을 느낍니다.

기념식을 마치고 교통 통제가 풀리고서야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왜인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여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볼륨을 높여 김세환의 기타 반주에 얹어진 “길가에 앉아서”를 노랫말 곱씹으며 따라 불러보았습니다.


“활짝 핀 웃음이 내 발걸음 가벼웁게, 온종일 걸어 다녀도 즐겁기만 하네”

 

마치 오월의 금남로에서 쓴 것만 같은 유쾌한 노랫말이 오래도록 길 위의 존재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뒤 함께 들어주시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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