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정 농촌사회학자의 무죄 탄원서
2024-04-01      조회수 310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1977년 충주에서 김장의 계절에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83년 12월 서울로 올라와 서울의 끄트머리에서 자랐고, 20대 이후에는 여기저기 떠돌며 살아왔다. 지금은 부모님이 토마토 농사를 짓던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살고 있다. 농촌·농업·농민의 일이 집안일이기도 하여, 사회학 중에서도 농촌사회학 공부에 뜻을 두었다. 농촌과 먹거리에 대해 신문에 쓰고, 라디오 방송들과 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말하고 있다.

                                                - YES24 작가소개 

 작가님의 말


 매우 긴 글. 여러 탄원서를 썼었고 이 탄원서가 마지막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오늘 공개합니다. 하승우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염원을 담아 이순규 전지회장님의 무죄판결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직접 써주었습니다. 타생협의 실무자들까지도요.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무죄판결을 받아내 기쁘지만 왜 이렇게까지 했어야는지, 끝내 풀리지 않는 분노의 마음까지 남겨둡니다.


탄 원 서

사 건 2022고단193

피 고 인 이 순 규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시민이자 농촌과 먹거리를 연구하는 연구자이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은정입니다. 그리고 농민의 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의 농업의 어려움의 근본원인이 농산물유통체제가 시장에만 맡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에 농약과 비료에 의지하며 농사를 짓게 되어 땅과 물은 물론 농민들 건강마저 망가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에 농민과 소비자들이 협동하며, 지구 환경을 지키며 친환경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소비할 수 있는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여 2003년부터 아이쿱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 물품 구매는 물론 아이쿱의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왔습니다. 농촌과 먹거리 연구의 전문가로서 타 생협은 물론 아이쿱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먹거리와 농업교육의 강사로도 종종 나서기도 했습니다.

 

 아이쿱생협은 점점 더 규모가 확장되고 조합원의 수도 늘어갔습니다. ‘자연드림’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규모있는 ‘자연드림’ 매장이 전국 곳곳에 들어서고 아이쿱조합원들 조합원가에 아이쿱 물품을 구매,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예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친환경 먹거리와 물품을 조합원들에게 공급하겠다는 목적으로 구례에 ‘구례자연드림파크’를 건설하겠다 했습니다. 당시 아이쿱조합원들은 구례자연드림파크 조성에 출자금을 내기도 하고, 분명 아이쿱생협의 생산기지로 그 취지를 이해하였고 지금도 대다수의 조합원들은 구례자연드림파크가 곧 아이쿱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또한 아이쿱 생협이 굵직굵직한 사업 변화가 있을 때마다 신성식 씨는 늘 등장한 이름이었고, 실제로 탄원인도 지역 생협(대구, 천안)에서 자연드림 매장 개설이라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신성식 씨가 직접 내려와 조합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직접 본 적도 있습니다. 신성식 씨는 자신의 생협운영에 대한 철학을 밝힌 몇 권의 저서를 낸 바 있으며, 그 책을 조합원들이 구매하여 독서를 진행하는 등 실질적인 아이쿱의 오너이나 최고경영자, 최종 의사결정자로 실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소비자조합원들의 복지만이 아닌 먹거리를 생산하고 가공, 유통하는 노동자 모두 아이쿱생협의 구성원들이며 생산자가 행복하고 노동자가 행복한 그런 먹거리를 먹고 물품을 쓰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는 때로 심각하게 침해되었으며 아이쿱생협의 사업구조는 조합원들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져 갔습니다. 자연드림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외주회사의 소속이었고, 근무의 조건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생협의 먹거리와 물품을 이용하는데 구례자연드림파크에 입주한 ‘개인’들이 소유한 주식회사의 형태를 띠면서 처음의 생협취지와는 거리가 멀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구례자연드림파크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고 저는 이를 농촌에서 이 정도 취업자리면 감지덕지하라는 건가 싶어 농촌 연구자로서 불쾌하였습니다.


 이에 구례자연드림파크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저는 당연히 아이쿱생협의 조합원으로서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조합을 지지해 왔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에게 이 사안을 알려내려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습니다. 2018년부터 전주, 진주, 천안, 수도권의 아아이쿱조합원과 간담회를 조직해 노동조합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호소해 왔습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아이쿱생협의 의사결정 구조가 매우 복잡하여 조합원들의 비판적 의견을 전달할 방법조차 없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이용했던 자연드림의 물품이 노동자들의 고통과 눈물이 깃들어 있다는 것에 매우 큰 충격과 분노,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여기에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기는커녕 교섭은 의도적이다 싶을 만큼 사측에서는 무성의하게 대응했으며, 경영상 어려움을 핑계로 임금상승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의 삶을 옥죄는 가장 악질적인 소송을 남발하여 악덕 기업주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며 매우 절망스럽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소송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는 일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습니까. 신성식 씨는 자신은 아이쿱에서 월급 한 푼 받지 않는다 하면서도 수많은 소송을 진행하고,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운영되는 아이쿱생협은 소송대리인 비용을 대체 어디에서 끌고와 어떤 명분으로 진행하는지 조합원으로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생활협동조합은 시장에만 삶을 맡기지 말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상생의 세상을 꿈꾸는 민주주의 결사체입니다. 하지만 그간 아이쿱생협 경영진들이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자들에게 보여준 행태는 과연 생협정신에 맞는지 묻고 싶습니다. 법에서도 보장하는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노동조합의 기본적 활동인 임금협상과 근무조건 개선에 대한 요구를 협상 테이블에조차 올려보지 못하는 조직이 과연 민주주의의 꽃인 협동조합일까요? 이순규 지회장은 이 관행을 깨고 구례자연드림파크가 노동자도 생산자도 그리고 소비자도 생협의 본 취지에 맞게 운영되길 희망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였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이어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인 생협은 이순규 지회장을 형사고발하여 유죄를 내려달라 후안무치하게 굴고 있습니다.

 

 아이쿱은 소비자조합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닌 생산자와 노동자 모두의 조합입니다. 그동안 아이쿱생협이 보여준 행태에 실망해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조합과 연대를 해오던 소비자조합원들도 아이쿱생협을 탈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순규 지회장의 외로운 분투는 정년퇴직을 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적이고 인권이 보장되는 근무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는 이유, 무엇보다 실질적인 고용주체로 판단한 신성식씨를 호명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쿱생협의 명예훼손을 하였다는데 저는 아이쿱생협의 조합원으로서 제가 가진 상생과 협동에 대한 신념을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고 있는 주체는 아이쿱생협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제 부끄러워서 어디에 가서도 아이쿱생협 조합원이라고 말도 하기 어렵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차이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유죄를 잘못이 없다면 무죄를 받는 것이 법의 절차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순규 지회장은 죄가 없습니다. 오랜 소비자조합원도 아이쿱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신성식 씨라고 여겨왔고 구례자연드림파크가 아이쿱생협에서 취급하는 모든 먹거리와 물품의 전용 공급처라고 알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실체에 대하여 발언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죄가 될 수도 없으며 이는 노동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불순한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아이쿱생협은 자정의 목소리를 내었던 조합원들(저를 포함한)에게도 명예훼손을 한다며 내용증명을 보내오기도 하였습니다.

 

 재판장님 간절히 호소합니다!

 

 저는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조합이 결성된 이래 함께 손을 잡고 걸어나온 소비자조합원입니다. 지난 8월 이순규 지회장의 퇴임식에서는 눈물로 그를 배웅했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그를 응원했고 위로를 하였습니다. 묵묵하게 노동자의 길을 걸었고 자신의 신념에 맞게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해온 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엉킨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지루한 이 법정 공방을 끝내고 이순규 지회장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져 그가 온전한 정년퇴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탄원합니다.

 

2023년 9월 20일

탄 원 인 정 은 정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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