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구술기록] 다녀올게요 첫 번째 - 김유진 님의 이야기
2025-11-27      조회수 448
김유진 님의 이야기

김덕원 정선숙 김강헌 유가족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울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세간이 기대하는 '유가족다움'을 거부하겠다는 김유진 대표. 웃으며 씩씩하게 말을 이어 나가다가도 눈물을 흘리는 그의 얼굴에서 비치는 커다란 아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만인 앞에 무릎을 꿇어도 당당한 모습. 그 강인한 슬픔을 지켜보는 것.

동생은 진짜 착하고 성실했어요. 생전 남한테 '비키세요' 한마디 한번 해본 적이 없는 순하고 말없는 내성적인 친구. 그 친구가 10년 장기근속 기념으로 회사에서 여행을 보내주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가고 싶었나 봐요.

 

사는 데가 천안이어서 본인이 혼자 갔으면 여기 올 일이 없었어요. 부모님 편하게 모시고 가려고 무안공항으로 가게 된 거죠. 결혼을 했으면 자기 식구들이랑 인천공항에서 갔을 건데. 결혼 안 한 효자 아들이어가지고 부모님 모시고 갔는데 이제 못 돌아오게 됐죠.

30년 전에 동생이 초등학생 때 엄마랑 아빠가 동생만 데리고 태국 여행을 갔어요. 제가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닐 땐데 저도 한참 사춘기잖아요. 굉장히 화를 냈어요. 엄마는 동생만 예뻐하고! 왜 나는 안 데리고 가고!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이 되게 대단한 거였잖아요. 동생만 갔다 와서 막 코끼리 탄 사진 이런 게 있으니까 엄청 샘이 났거든요. 나는 안 데리고 갔다고 그때 원망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번 여행지도 태국이었지 않나 싶어요. 셋이서 30년만에 같은 나라를 다시 여행하면서 소회가 엄청 깊었겠죠. 그런데 이번에도 왜 나만 안 데리고, 공교롭게 또 세 명만 가서 그랬냐고. 엄청 원망하면서 많이 울었죠.

2024년의 마지막 주말이어서 아이들과 여수에 여행을 가려고 했어요. 가서 애들이랑 케이블카도 타고 그러려고 아침 일찍부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친척분께서 전화하셔서 아무래도 저희 부모님 타고 있는 비행기가 사고가 난 것 같다, 한번 진짜 탑승했는지 알아보라고 전화가 왔어요.

 

이제 핸드폰을 켜니까 공항에서 사고가 났다고. 그때가 9시쯤 사고 난 바로 직후여서 부랴부랴 알아보면서 공항으로 갔어요. 일단은 그냥 공항으로 가자, 어떻게 되든 가면서 알아보자. 그래서 여행 가려고 했던 그 복장 그대로 갔어요. 화장하고 예쁘게 꾸민 그대로.

 

하늘이 너무 맑았어요. 구름도 별로 없고.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 맑은 날에 왜 돌아가시는지 이해가 안 가는거예요. 비라도 와야지. 악천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이러면 그나마 이해되겠는데 그렇게 맑은 날 이 멀쩡한 공항에서 그렇게 돌아가셨다는 게 말이나 되는지.

저는 장흥에 사는데, 제 아이가 넷이다보니까 아이들 육아 도와주시려고 자주 오셨어요. 그러다가 육아뿐만 아니라 일에도 점점 깊이 관여하셔서 2도 5촌으로 5일은 장흥 저희 집, 촌에서 사시고 도시에서는 주말에만 계시고 그렇게 사셨죠.

 

남편이 목장을 해서 거기서 갓 짠 우유로 유제품 같은 거 만들어서 카페도 하고 인터넷 판매도 하는데 새벽에 목장에서 우유를 가지고 오는 일이나, 택배를 같이 싸고 그걸 차로 우체국으로 가져다주시는 거. 그런 걸 부모님들이 다 도와주셨어요.

 

엄마가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셨거든요. 카페에서 커피를 내려주셨어요. 엄마 나 커피 한 잔만, 이렇게 할 때마다 서로 웃었거든요. 나는 그냥 가짜 바리스타지만 엄마는 자격증도 있는 정통이라고. 그렇게 엄마 바리스타한테 커피를 매일 얻어먹었어요. 내가 커피를 이렇게 타고 있을지 몰랐다 이러면서 내려주시고. 먹으면서 되게 뿌듯했어요.

 

아빠는 진짜 긍정맨이셨어요. 아빠 이거 이렇게 해볼까? 그러면 아 좋아~! 억양 자체가 항상 너무 힘차고 오케이~! 알겠슈~! 이렇게 항상 재밌고 유쾌하고. 이걸 팔아보면 어때? 이 땅에 뭔가 해보면 어때? 하면 아이고 좋다! 이런 리액션이 너무 좋아가지고 홀린 듯이 같이 사업을 번창시켰거든요. 아빠는 뒤에서 응원해주는 응원단장이었는데. 그런 게 없어져 가지고 사실 모르겠어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지.

 

10년 이상 준비한 일이 척척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작년이 진짜 힘들었어요. 막바지가 되게 힘들잖아요. 힘을 다 쏟아부어서 올해까지만 딱 고생하고 내년부터는 진짜 편안하고 좋은 일만 남았다. 올해는 너무 힘들었지만 잘 보냈다. 그래도 가족 다 건강해서 다행이다. 그랬는데 갑자기 그 내년을 3일 남겨놓고 사고가 일어났어요. 모든 게 다 멈췄어요. 인생 자체가 멈췄죠.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냥 부모만 잃어버린 게 아니라 저는 진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마치 다섯 살 어린 아이가 사람 많이 지나다니는 광화문 거리 한복판에 버려진 듯한 그런 막막함과 암담함이 느껴져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부모님 나이 드시면 내가 진짜 잘해야지. 부모님한테 받은 만큼 나이 드시고 편찮으시면 진짜 잘해야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동생한테도 나중에 진짜 잘해야지 맨날 그런 생각을 했는데 나중은 없더라고요.

 

남동생은 직장이 천안이라서 따로 살았어요. 저는 한 8년을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는데 남동생은 오히려 휴가 때 고향에 와도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고 그랬죠. 부모님이 저희 가정에 더 많이 해주시고 동생한테 신경을 더 못 썼죠. 그래서 더 미안해요.

저희 부모님은 음악을 엄청 좋아하세요. 아빠는 트럼펫을 부셨는데 경력은 한 30년 됐나? 그런데 실력도 30년 동안 똑같았어요. 좋아하시기만 하셨네요. 교회 다니시니까 찬송가 한 곡을 연습하는데 꼭 삐빅-하고 잘못 부는 똑같은 구간이 있어요. 꼭 거기서 틀려요. 하하하. 그 삐빅- 하는 그 소리가 그립네요.

 

반면에 엄마는 음악적 소질이 많으셔서 첼로를 하셨는데, 잘하셨어요. 최근 몇 년에는 레슨도 많이 받으셔서 실력이 일취월장하셨다고 엄청 자랑했거든요. 되게 자부심 뿜뿜하시고 계셨어요. 그런데 저는 첼로 할 줄도 모르고, 악기 크기도 큰데 버리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고 있어요. 엄마한테 갖고 가라고 하고 싶네요. 하하.

남동생 차가 있어요. 진짜 오래된 파란색 모닝. 그것도 원래 엄마가 타고 다니던 거예요. 그것도 갖고 가지. 그것도 똑같아요. 팔지도 못하고 타지도 못하고 폐차도 못하고. 처음에 남동생 집에서 차 가져올 때도 키가 없어서 문을 따서 여기까지 갖고 왔거든요. 그 후로 한 번도 운행은 안 하고 파란색 모닝이 저희 집 앞에 서 있어요. 계속 볼 때마다 욕만 하고 있죠. 차라도 좀 좋은 거 몰고 다니지하고. 볼 때마다 화딱지가 나요. 

 

유품 정리할 게 별로 없었어요. 옷도 많이 없고 너무 뭐가 없어요. 없어가지고 진짜 속상하고. 진짜 검소해가지고 동생 가방이 있었는데 농협에서 준 가방이었어요. 그 나이에 그런 가방을 들고 다니는 애가 없거든요. 적어도 나이키는 들잖아요. 그런데 농협에서 준 가방이더라고요. 그걸 진짜로 메고 다녔어요.

 

사실 제 것도 아닌데 생전에 부모님께 나는 너무 지금도 넘치게 받고 있으니 혹시라도 남겨주실 거 있으면 동생을 다 주시라, 그렇게 얘기했었거든요. 그런데 동생이 그렇게 검소하게 아끼고 살다가 그마저도 저한테 남기고 갔어요. 본인 위해서 쓰고 마음껏 하다 갔으면 덜 슬펐을 텐데. 뭘 위해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고...

동생이 남기고 간 것들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동생의 인생이고 동생 그 자체거든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이것들로 내가 좋은 걸 사 먹고 좋은 걸 사고 그럴 수는 없고. 동생의 이름을 잘 남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될지.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유가족이 되고 나서 보니까 세월호, 이태원 유가족들이 왜 그렇게 진상규명을 외치는지 알게 됐어요. 왜 우리가 갑자기 이별하게 됐는지 그냥 이유라도 알고 싶은 거예요.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잖아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왜 우리가 이런 이별을 해야 됐는지를 사회가 알려줘야 한다. 이게 우리의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해요.

 

또 우리 가족들의 희생이 그냥 불운하고 억울한 죽음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해요. 이 사고의 이유를 정확히 알고 사회를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고 싶다. 어떤 배상, 보상보다도 우리 가족들의 이름을 사회를 바꾸는 좋은 힘으로 기록되게 하면 좋겠다라는 그런 것밖에 위로받을 게 없어요.

 

그래서 그런 노력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는, 정말 다시는 우리 같은 아픔을 겪는 유가족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면 안 된다. 우리 가족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이 남은 가족들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힘든 게 뭐냐면, 뭔가 유가족이 죄인인 것처럼 스스로 주홍글씨가 찍히는 거예요. 알 수 없는 죄책감도 있고 사람들의 시선이나 이런 게 굉장히 신경 쓰여요. 뭔가 부모님 돌아가셨는데 웃으면 안 될 것 같고, 뭐 하면 안 될 것 같고, 다 나만 보는 것 같고. 모든 행동이 위축되고 대인기피증 같은게 생겨요.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몇 개월 지나고 나서는 오히려 빨간 립스틱 바르고 다녔어요. 그런데 뭐 좋은 일 있는 것도 아닌데 웃지 말라는 요구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잘못한 게 전혀 아니다. 이 사고는 내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유가족인 것을 당당하게 세상에 이야기하겠다 마음먹었어요. 내가 어떻게 살 건지는 내가 결정하는 문제니까.

 

맨날 울고 불고 분노에 북받쳐서 사는 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가족의 모습이잖아요. 하지만 누가 내게 그런 모습을 원해도 거절해야겠다. 내가 잘못한 게 전혀 아니고, 나는 나 원하는 대로 살겠다. 나는 웃을 수 있고 밝게 얘기할 수 있다. 누군가 그걸 비난한다해도 나에게 그런 유가족의 모습을 강요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살기로 했어요.

 

내가 겪은 일이 분명히 불행이긴 한데, 내 삶을 불행한 상태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나의 인생을 다시 행복하게 하는 데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 그 두 가지 중 우리 가족들은 후자를 선택하기를 바라실 것 같아서 그렇게 살아야겠다. 얼마 전에 그렇게 결심을 했어요.

 

내 가족이 나에게 준 따뜻함과 사랑을 이야기함으로써 이 사회를 조금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는 게 나에게 주어진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이제 유가족으로서 사회 곳곳에 가서 이 사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당하게 호소하고 떳떳하게, 건강하게 살려고 해요.

그래도 하늘에 있는 우리 엄마가 보면 화 엄청 내실 것 같아요. 유가족 협의회 대표 이런거 뭐 하러 맡았냐고, 너네 애들이나 잘 보지 이게 뭐 하는 거냐고. 이런다고 내가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닌데 애들 밥이랑 막내나 잘 챙기라고 엄청 혼날 것 같은데. 속 하나도 없네! 그러면서.

 

아빠는 할 수 있으면 해야지, 하시면서 오케이~! 하실 것 같은데 동생은... 좀 미안해 할 것 같아요. 서로 미안해 하는 것 같아요. 나는 살아생전에 너무 못해줘서 미안하고. 동생은 자기가 모시고 간 거라 너무 미안하고. 서로 만나면 말 못하고 울 것 같아요. 괜찮다고 얘기해줘야 되는데. 동생 때문에 너무 미안하고 맺히는 것 같아요.

저희 참사는 단순히 불행한 사고가 아닌 인재였어요. 수많은 사소한 경고들을 무시한 결과 벌어진 인재. 우리나라 항공 서비스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그 공항의 화려함 뒤 정작 항공 안전 시스템은 완전히 부실 그 자체였죠. 저희도 이 참사를 통해 진실에 가까이 가려고 하다 보니까 알게 됐어요.

 

무안공항-제주항공 참사가 우리만의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본인과 가족들의 항공 안전을 위해서라도 심각하게 관심 가져야 될 사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시는 우리 같은 슬픔을 겪는 유가족이 생기면 안 되잖아요.

 

참사 10개월이 지났지만 정부에서 여태까지 한 안전 권고는 딱 하나예요. "둔덕에 있는 공항에 고경력자 기장, 조종사를 배치하라." 고경력자 기장은 안 죽어요? 그런 현실이에요. 전국의 모든 콘크리트 둔덕들이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정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더 안전하게 공항을 이용하실 수 있다. 요새 비행기 1년에 한 번 안 타는 사람 없잖아요.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갖고 같이 목소리 내주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첫 번째 나오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 두 번째 나오는 말이 고맙다는 말. 너무 뻔한 말인데 그 말들만 나오네요. 세 번째 나오는 말은 보고 싶어. 그거 세 개밖에 안 나오네요. 그 세 개면 할 말이 다 끝나는 것 같아요.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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