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장흥에 사는데, 제 아이가 넷이다보니까 아이들 육아 도와주시려고 자주 오셨어요. 그러다가 육아뿐만 아니라 일에도 점점 깊이 관여하셔서 2도 5촌으로 5일은 장흥 저희 집, 촌에서 사시고 도시에서는 주말에만 계시고 그렇게 사셨죠.
남편이 목장을 해서 거기서 갓 짠 우유로 유제품 같은 거 만들어서 카페도 하고 인터넷 판매도 하는데 새벽에 목장에서 우유를 가지고 오는 일이나, 택배를 같이 싸고 그걸 차로 우체국으로 가져다주시는 거. 그런 걸 부모님들이 다 도와주셨어요.
엄마가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셨거든요. 카페에서 커피를 내려주셨어요. 엄마 나 커피 한 잔만, 이렇게 할 때마다 서로 웃었거든요. 나는 그냥 가짜 바리스타지만 엄마는 자격증도 있는 정통이라고. 그렇게 엄마 바리스타한테 커피를 매일 얻어먹었어요. 내가 커피를 이렇게 타고 있을지 몰랐다 이러면서 내려주시고. 먹으면서 되게 뿌듯했어요.
아빠는 진짜 긍정맨이셨어요. 아빠 이거 이렇게 해볼까? 그러면 아 좋아~! 억양 자체가 항상 너무 힘차고 오케이~! 알겠슈~! 이렇게 항상 재밌고 유쾌하고. 이걸 팔아보면 어때? 이 땅에 뭔가 해보면 어때? 하면 아이고 좋다! 이런 리액션이 너무 좋아가지고 홀린 듯이 같이 사업을 번창시켰거든요. 아빠는 뒤에서 응원해주는 응원단장이었는데. 그런 게 없어져 가지고 사실 모르겠어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지.
10년 이상 준비한 일이 척척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작년이 진짜 힘들었어요. 막바지가 되게 힘들잖아요. 힘을 다 쏟아부어서 올해까지만 딱 고생하고 내년부터는 진짜 편안하고 좋은 일만 남았다. 올해는 너무 힘들었지만 잘 보냈다. 그래도 가족 다 건강해서 다행이다. 그랬는데 갑자기 그 내년을 3일 남겨놓고 사고가 일어났어요. 모든 게 다 멈췄어요. 인생 자체가 멈췄죠.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냥 부모만 잃어버린 게 아니라 저는 진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마치 다섯 살 어린 아이가 사람 많이 지나다니는 광화문 거리 한복판에 버려진 듯한 그런 막막함과 암담함이 느껴져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부모님 나이 드시면 내가 진짜 잘해야지. 부모님한테 받은 만큼 나이 드시고 편찮으시면 진짜 잘해야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동생한테도 나중에 진짜 잘해야지 맨날 그런 생각을 했는데 나중은 없더라고요.
남동생은 직장이 천안이라서 따로 살았어요. 저는 한 8년을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는데 남동생은 오히려 휴가 때 고향에 와도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고 그랬죠. 부모님이 저희 가정에 더 많이 해주시고 동생한테 신경을 더 못 썼죠. 그래서 더 미안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