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기록1] 법에 막힌 사회적 기본권 (주의: 길고 어려우나 필요함)
관리자 ㅣ 2024-04-01 ㅣ 240


 Wit.ness Weaver 소화 


 어쩌다보니 7년 남짓 ①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활동서비스로 변경이 안되는 당사자분들, ② 발달장애인으로 발달장애인주간활동서비스를 받고 있었는데 65세 넘었다고 서비스가 중단된다는 통지를 받은 분들, ③ 생애 처음으로 지역사회에 정착하여 살아보려고 하는 발달장애 당사자가 65세가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발달장애 주간활동 서비스 포함)를 신청할 수 없는 분들이 가진 문제와 함께 하고 있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기도 하고 행정소송들도 승소하였다. 그러면 뭔가 끝이 날 줄 알았다. 그러나 이상도 하지. 당사자들은 여전히 같은 문제 겪고 있으니 말이다. 뉴스레터에 승소소식이라고 올렸건만 이겼지만 이기지 못한 이겼지만 이기지 못한 상황의 계속... 원인을 알고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  그런데 그 변화를 일으킬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일개 지역 공변으로서, 언젠가는 당사자들의 상황과 이야기가 법적인 화살이 되어 날아가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련 소송의 과정과 판결에서 설시된 법리들의 의미 등에 관하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보장 관련한 법률지원을 하다보면 ‘법’이라는 큰 벽으로 사회적 '기본권'이 막히는 것 같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기본권이 권리 영역에서 내몰리는 느낌, 동시에 법이라는 이름으로 당사자들이 동료 시민에서 내몰리는 느낌이 든다. 사회보장은 기본권이어야 할 법의 형식부터가 권리 영역에서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보통 권리라고 하면 적어도 법률에서 자신이 가진 권리가 무엇이고 어떤 경우에 제한되는지 예측가능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 기본권 혹은 사회보장급여의 경우,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만으로는 당사자들은 사회보장급여 신청자격, 급여 정도를 전혀! 알 수 없다. 시행령, 시행규칙으로도 알 수 없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 어떤 고시 별표, 어떤 경우에는 보건복지부 사업 안내까지 뒤져야 겨우 알 수 있다. 그것도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숫자와 말로 도식화되어 있어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독일 사회법전과 대조적이다.


 사회적 기본권이 법령 체계에서부터 권리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부분에 있어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판결로서 알리바이를 계속 대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기본권은 프로그램규정 혹은 추상적 권리이고, 집행기관인 행정부의 전문영역이기 때문에 광범위한 재량이 있다는 설시만을 복사기처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회보장급여는 ‘광범위한 재량’ 을 근거로 그 주요 내용이 법률로는 예측가능하지 않고 ‘시행규칙, 고시, 별표’를 찾아찾아보아야만 겨우 해석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사무소에서 서비스 신청을 함부로 반려 처분 당한 당사자의 상황을 법리적으로 자문하기 위해, 그 행정처분의 법령의 근거, 시행규칙, 고시, 수백쪽에 이르는 매뉴얼 찾아 헤맬 때 법이 사회적 기본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큰 벽을 느낀다. 사회적 기본권은 ‘권리’임에도 ‘법률’로는 예측가능하지도 명확하지도 않은 법령들을 마주할 때, 권리에서 내쳐진 억울함(사회적 기본권 입장에서) 혹은 동료 시민에서 내쳐진 모욕감(당사자의 입장에서) 같은 마음이 올라온다.


 위와 같은 이유로 사회적 기본권과 관련한 문제들을 법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볼 때 두 번째로 큰 벽을 느낀다.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고 하는 법원에서, 이 분들이 가진 문제를 온전히 신속하고 더 간편한 절차로 판단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행정소송법의 한계로(대상적격 획득의 어려움, 의무이행 소송 부재, 가구제 부재, 높은 소가) 법원에서 소송 자체로 다뤄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소송으로 다루어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과 기약이 없고, 짧아야 수개월 수 년이 걸리기도 한다. 소송이 설사 수개월 안에 끝난다 하더라도 소송을 하려면 자신의 삶과 일상을 걸어야 하기에 당사자가 소송을 마음먹을 수가 없어 소송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세번째 벽사회적 기본권과 관련한 법원의 판단기준이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사회적 기본권 그 자체의 권리성을 헌법과 국제규약 자체로부터 도출하지 않고 법률 및 그 하위법령에 따라 구체화 되었을 때에야 권리로 인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기본권이 쟁점이 된 행정소송에서는 신청권의 존부 혹은 처분성 존부라는 대상적격 본안전 항변부터 다투어진다. 처분성이라는 본안전항변의 벽을 넘는다 하더라도, 사회적 기본권이 침해되었는지 여부에 대하여 엄격한 심사기준(과잉금지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광범위한 재량을 근거로 완화된 심사기준만이 적용되기 때문에 위헌/위법 판결을 받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본권이 쟁점이 되는 경우 평등 원칙 위반 여부도 함께 심사되는데 이 때에도 엄격한 심사 기준이 아니라 자의금지원칙만이 적용되기 때문에 기본권 침해라는 판결을 받기가 너무나 어렵다. 즉 당사자 입장에서는 소송요건 갖추기도 어려운데 소송요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승소 가능성이 너무 낮아 법적인 문제제기를 시도해볼 엄두를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누가 자신의 일상의 위험, 불편, 안전을 걸고 패소할 싸움을 시작할 수 있겠는가(아아~ 자유권적 기본권은 사회권적 기본권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기본권은 권리가 아니라 시혜적으로 베풀어지는 것이니 그 정도는 참고 살아야 한다는 시각이 (인권을 말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관련 법령에 뿌리박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음 글부터 분석할 판결들은 위와 같은 벽들을 넘어 가능했던 예외적으로 소송이 가능했던 극소수의 사건들이었음을, 그리고 어렵게 삶을 걸고 결심하고 버틴 당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판결들이었음을 밝히며 다음 글들을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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