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소식] N의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재판 이야기
2024-06-05      조회수 60
[승리소식] N의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재판 이야기
(햄변의 재판 후일담 주절주절 그러나 장문주의)

햄변 위서현
안녕하세요.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위서현 변호사(이하 ‘햄변’이라 합니다)입니다. 오랜만이지요? 하하. 그동안 다소 격조하였습니다. 격조하였지만 동행의 활동은 쉼 없이 계속되었고, 그사이 크고 작은 승리도 여럿 있었습니다.

한편 오늘은 여러 승리 중 하나를 소개하여 볼까 합니다. 그중 하나는 광주고등법원에서 있었던 “난민불인정결정취소”의 소에서의 승소 소식입니다. 동행은 광주에서, 그리고 한국의 여러 공간에서 민주화 투쟁을 하는 활동가들과 만나거나 소개를 받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독재 정권에 시민들이 나서 민주화를 요청하였던 “5월 광주”라는 특성 때문이겠지요? 한편 한국 밖의 여러 공간에서도 민주화의 열망을 가진 세계의 동료 시민들이 저항의 역사로서 5월 광주를 이야기하고, 5월 광주를 찾으며 나아가 5월 광주를 기념하여 부르는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한다는 뉴스 같은 것을 볼 적마다 새삼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 N 역시 광주, 전남을 비롯한 한국 전역,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본국의 독재정권에 반대하여 민주화 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온 활동가입니다. 그는 이전에 동행이 유사한 사안에서 지원한 바가 있는 다른 활동가 동료와 함께 정치활동 조직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고 하였습니다. N 역시 다른 동료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박해의 염려가 있음을 이유로 한국 정부에 난민인정신청을 하였으나 불허결정을 받았고, 이를 1심 법원에서 다투었으나 패소하였습니다. 패소에 불복하기 위하여 다른 활동가 동료들과 함께 동행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처음 연락을 받고서는 다소 우려되는 부분이 여럿 있었습니다. 일단 저도, 그리고 동료 이소아 변호사(이하 ‘보스’라고 합니다)도 N이 소속된 정치조직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정작 당사자인 N에 대하여는 잘 아는 바가 없었고, 이미 1심에서 패소한 상황에서 난민 인정 사유를 입증하기 위한 사실관계 등을 수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동행은 직접 위임장 등을 제출하여 대리하지는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고, 다만 N이 소속된 정치조직의 “운동”과 “활동”의 차원에서 법원에 직접 항소장 등을 접수하는 절차들을 직접 안내하는 방식으로 조력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어느 더운 여름날 햄변은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N과 그의 동료들을 만났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항소장 접수를 위한 절차를 안내하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경험은… 한국어 등을 유창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이주민에 대한 사법접근권이 지나치게 낮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유난히 더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법원의 민원실, 은행, 그리고 외국어 등으로 안내되지 않는 상황들. 유난히 더웠던 항소장 접수를 무사히 마친 다음에서야 N과 동료들은 겨우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그제야 햄변에게 N의 활동내용을 담은 여러 서류와 그가 투쟁하여 온 서사를 이야기하여 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햄변은 “확인해 보고 연락드리겠다”는, 너무나 변호사스러운 답을 남기고 사무실로 복귀하였지요.

이후 항소심 기일이 지정되었을 무렵, 형식상으로나마 N이 항소이유서를 내야 할 시점을 앞둔 상황에서 햄변은 1심 기록을 보고 N의 주장들을 간략히 정리하던 중, N이 준 자료와 N의 활동사진, 그리고 N의 SNS 계정 등을 확인한 다음 1심에서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였던 자료들을 제출한다면 어쩌면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N과 그리고 그의 동료들과 다시 만났습니다. 늦은 밤까지 깊이 이야기를 나누고 가능한 주장들을 정리한 다음에서야 햄변은 본국의 정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N과 그 동료들의 열망에 대하여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임장을 제출하여 N의 조력인에서 공식적인 법률대리인이 되었지요. 그 후 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N과 그의 동료와 함께 면담하였고, 늦게까지 논의가 계속되는 날에는 충장로에서 닭갈비에 볶음밥까지 볶아 나누어 먹으며 이런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누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한편 이렇게 N과 동행이 만난 짧은 순간들 속에서, N이 떠나온 본국의 정치적 상황은 민주화 혹은 야당 정치활동가들에게 더욱 엄혹하고, 어렵게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권력자들은 총선에서의 패배를 두려워하여 야당의 정당 등록을 막았고, 오래간 국가를 통치하여 온 사실상의 독재권력은 총선에서의 승리 이후 야당 정치인들을 구금하거나 탄압하였고, 나아가 그의 직계비속에게 독재권력을 넘겨주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역사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된 것이었고, N과 그의 동료들은 한국에서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조직하기도, 나아가 이러한 폭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온라인 SNS 등을 통하여 계속하여 내며 투쟁하여 왔습니다. N은 언젠가 제게도 “공식적으로” 야당의 주요 정치인이 한국에 방문하는 것을 기화로 조직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보내주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일정이 있어 참여하지는 못하였지만요.

이후 두어 차례 변론기일이 열렸고, 마지막 기일에서는 N과 오래간 활동하여 왔고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한국의 법원에서 난민 인정 사유가 있다는 판결을 받은 다른 활동가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동행의 구성원인 햄쥐가 2024년 4월 뉴스레터에 실린 웹툰으로 방청한 소회를 나누어 주기도 하였지요. 이 기일이 바로 에피소드에 등장한 사건이었습니다. 하하. 충분히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하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통역 등 어려움으로 질문이나 답변의 취지가 잘 전달되지 아니한 순간의 당혹감, 그럼에도 어찌 증인신문을 무사히 마쳤던 순간의 안도감도 바로 엊그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그리고 2024. 5. 9. 광주고등법원은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사건의 주요 쟁점이나 법리 등과 별개로 난민 사건을 조력하며 든 소회는 (이는 햄변의 의견으로 동행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 정부는 각 난민신청자와 난민신청자 등이 속한 집단이 처한 정치적 박해 내지는 인권침해의 가능성에 관하여는 차별적일 정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는 곧 N과 같은 난민 인정사유가 있는 당사자들을 본국으로 퇴거하는 처분 등으로 구체화되고, 실질적으로 난민 인정사유가 있는 이주민들에 대하여 한국 정부가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즉, 이러한 태도는 국제 사회 차원에서 곧 인권침해를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척 다행스럽게도 광주고등법원은 N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라면 정치적 박해를 받을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사실 이 사건 승소소식과 관련하여 뉴스레터에서는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되었던 내용, 그리고 그 구체적인 근거 등을 조금 상세히 설명할 예정이었으나, 정말 안타깝게도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서 상고하여 곧 상고이유서를 받아들고 또 추가하여 다툼을 이어나가게 된 상황이라 일단은 여기서 줄여보겠습니다. 

(너무나 기쁠) 심리불속행 기각 소식과 함께 찾아올 햄변을 다시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시겠지요? 하하.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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